이세현의 사진전 《잔광(殘光)》이 9월 8일에 열렸다. 20일 일요일에 닫으니 여드레 남았다. 장소는 스페이스 이신(SPACE LEESEEN)이다.

빛을 쏘아 찍었다

작가가 카메라를 세운 자리는 여섯 곳이다. 노근리의 콘크리트에 박힌 탄흔, 경산 코발트 광산의 갱도, 광주 적십자병원의 옛 수술실, 광천시민아파트, 동해안의 군사 철책, 의성에서 산불이 지나간 자리. 사건이 끝난 지 짧게는 한 해, 길게는 일흔 해가 넘은 곳들이다.

이세현은 그 위에 붉고 푸른 인공조명을 직접 쏘아 촬영했다. 낮에 가면 콘크리트는 콘크리트이고 갱도는 갱도다. 빛을 얹으면 표면이 달라진다. 총알이 지나간 자국과 그을음이 색을 얻어 다시 떠오른다. 걸린 작품들은 모두 「푸른 낯, 붉은 밤」 연작에 속한다. 「낯」은 얼굴을 뜻한다.

노근리 쌍굴다리 콘크리트 벽면. 총탄 자국마다 흰 원이 그려져 있고, 벽 왼쪽은 짙은 푸른색, 가운데는 붉은색, 오른쪽은 노란색 빛을 받고 있다. 아래쪽에 지나간 차의 궤적 같은 밝은 띠가 가로로 그어져 있다.
〈노근리 총탄〉(2023), 100 × 150cm. 탄흔마다 흰 원이 그려져 있다. 한 벽을 두고 왼쪽은 푸르게, 오른쪽은 노랗게 물들었다.
좁은 갱도 안쪽. 양쪽 암벽은 붉고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고 막다른 바닥에만 푸른빛이 고여 있다. 천장에는 낡은 나무 받침목이 걸쳐 있다.
〈깊은 속(경산 코발트 광산)〉(2023). 양쪽 암벽은 붉고, 막다른 바닥에만 푸른빛이 고여 있다.

세 갈래로 묶었다

전시는 세 축으로 나뉜다. 첫째 축은 탄흔과 갱도의 어둠이다. 둘째 축은 광주 적십자병원과 광천시민아파트에 남아 있던 사물들이다. 셋째 축은 의성의 잔해와 동해안의 철책이다.

비어 있는 옛 수술실. 천장에 매달린 무영등 두 개가 노랗게 켜져 있고, 왼쪽 벽과 수술대는 분홍빛, 오른쪽의 의료 장비와 산소통은 파란빛을 받고 있다.
〈옛 광주 적십자병원 수술실〉(2024). 무영등은 노랗게 켜져 있고 방의 왼쪽과 오른쪽에 서로 다른 색이 들어와 있다.
4층 높이의 낡은 아파트 전경을 가로로 길게 담은 사진. 창마다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 조명이 서로 다르게 켜져 있고 가운데 계단실에 간판 글씨가 세로로 붙어 있다. 건물 앞은 흙바닥과 자란 풀이다.
〈광천시민아파트〉(2025), 250 × 700cm. 창마다 다른 색이 켜져 있다. 전시된 프린트 가운데 가장 큰 작품으로 가로가 7미터다.

앞의 둘은 오래된 사건이고 마지막 하나는 지난봄에 일어난 일이다. 시간의 간격이 큰 장면들을 한 공간에 걸어 두었다. 서문의 문장은 짧다. "모든 역사는 현재로 통한다."

산불에 무너진 건물 잔해. 함석 지붕이 통째로 내려앉아 있고 그 틈에서 노란 빛이 새어 나온다. 뒤편 숲의 나무들은 초록빛 조명을 받고 있으며 바닥에는 타다 남은 각목과 기와가 널려 있다.
〈의성 불의 흔적 2〉(2025), 80 × 120cm. 내려앉은 지붕 아래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해안을 따라 세워진 철조망 울타리. 윗단에 둥근 윤형 철조망이 이어져 있고 그 너머로 바다와 구름 낀 저녁 하늘이 보인다. 울타리 앞은 잡초가 자란 모래 언덕이다.
〈동해안 철책〉(2024), 80 × 120cm. 철조망 너머가 바다다.
저녁 하늘 아래 놓인 큰 종. 표면에 금이 가 있고 위쪽 고리 부분이 부서져 있다. 왼쪽에서 붉은빛, 오른쪽에서 푸른빛을 받고 있으며 바닥에는 깨진 기와와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뒤편으로 잎 없는 나뭇가지와 불빛이 든 구조물이 보인다.
불에 갈라진 종. 왼쪽에서 붉은빛, 오른쪽에서 푸른빛을 받고 있다. 바닥은 깨진 기와와 돌무더기다.

붉은빛과 푸른빛

이세현은 한국 근현대사의 상흔이 남은 자리를 찾아다니며 이 연작을 이어 왔다. 지난해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린 광주청년작가초대전 《이세현 : 푸른 낯, 붉은 밤》이 그 중간 결산이었다. 푸르게 질린 얼굴과 어둠 속의 붉은 빛을 맞세운다는 뜻으로 붙인 제목이다. 푸른빛은 상실과 애도를, 붉은빛은 폭력과 저항의 잔재를 가리킨다.

같은 연작에는 국군광주병원과 505보안부대를 찍은 사진도 있다. 색을 먼저 정해 놓고 장소를 골랐을까, 아니면 장소가 색을 불러왔을까? 답은 전시장에서 각자 찾을 몫이다. 두 색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사진이 있다면 거기부터 오래 보기를 권한다.

관람 정보

상세 주소와 휴관일은 스페이스 이신의 공지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 평일 낮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주말을 노린다면 남은 날은 13일과 14일, 19일과 20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