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을 처음 시작한 게 20년쯤 전이다. 그때는 필름 넣는 법을 영상으로 찾아보는 시절이 아니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책을 폈다. 그 시절 붙잡고 있던 책 두 권, 그리고 요즘 나온 책 두 권을 나란히 놓아 봤다. 필름을 배우는 방법이 생각보다 많이 바뀌었다.
시작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필름을 막 시작했을 때 읽은 책이다. 2004년 청어람미디어에서 처음 나왔고, 이상엽, 임재천, 강제욱, 노순택. 다큐멘터리 사진가 네 명이 썼다. 그해 주간경향 서평은 네 사람이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카메라 13종을 나눠 들고 세상을 누빈 책이라고 소개했다.
2006년에는 2권이 나왔다. 부제가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선, 필름 카메라」다. 책 소개를 보면 여섯 명의 사진가가 라이카 M6, 소련 최초의 카메라 페드 1, 코닥 레티나 IIIc 같은 레인지파인더 중심의 카메라 10종을 나눠 들었다. 카메라 다루는 법보다 그 카메라를 들고 나선 사진가들의 길이 중심인 책이다. 제목에 「낡은」을 붙인 것만 봐도, 그때 필름 카메라가 어떤 물건으로 여겨졌는지 알 수 있다.
군대에서 열 번 넘게 읽은 『이루의 필름으로 찍는 사진』
군대에 있을 때 이 책을 열 번도 넘게 봤다. 2007년 10월 영진미디어에서 나온 책으로, 250쪽에 세로 26cm 인 큼직한 판형이다. 도서관 서지에 적힌 부제는 「필름과 필름 카메라에 대한 최초의 활용 입문서」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이루는 충무로 현상소 포토마루의 대표다. 앞의 책을 사진가들이 썼다면, 이 책은 현상소를 지키는 사람이 썼다. 필름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을 날마다 만나는 자리에서 나온 입문서다. 2011년에는 「이루의 두 번째, 필름과 필름 카메라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루의 필름으로 찍는 사진 Season 2』도 나왔다. 포토마루는 오피트 현상소 목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20년, 『당신의 좋은 순간, 필름 사진』
13년 뒤인 2020년 6월, 동양북스가 『당신의 좋은 순간, 필름 사진』을 냈다. 저자는 필름로그다. 맡긴 필름을 롤 단위로 기록해 온라인에 보관해 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이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필름 카메라 기본 사용법부터 현상·스캔·인화 과정까지 다루고, 일회용 카메라를 다시 쓰는 방법과 필름으로 작업하는 세 사람의 인터뷰도 실었다. 현상·스캔 무료 쿠폰까지 들어 있다.
찍고, 맡기고, 스캔본을 받아 보는 한 바퀴가 책 한 권에 다 들어 있다. 쿠폰까지 넣은 걸 보면, 책을 덮자마자 필름을 맡기러 가는 데까지 생각한 구성이다.
지금은 수첩, 「필름생활안내서」
요즘 판매대에서 눈에 띄는 건 픽셀퍼인치(pixel per inch)의 「필름생활안내서」 개정판이다. 판매 페이지에는 「일삼오삼육X픽셀퍼인치」라고 적혀 있다. 초록 표지의 기본편과 분홍 표지의 발전편 두 권이고, 스프링으로 묶었다. 발전편은 105×148mm, 64쪽이다. 표지에는 「간단사용매뉴얼 INSTRUCTION MANUAL」, 아래에는 「빠른 참조를 위해 이 안내서를 가까운 곳에 두십시오.」라고 적었다. 카메라를 사면 함께 들어 있던 사용 설명서를 그대로 흉내 낸 표지다.
안을 보면 필름 상자와 매거진 그림에 번호를 달고, 필름 이름과 감도, 컷수, 유통기한, DX 코드, 퍼포레이션, 현상 방식을 하나씩 짚는다. C-41, E-6, ECN-2 를 나눠 놓은 표도 있다. 다른 펼침면에는 「찍고 있는 카메라와 사진이 마음에 드십니까? 좋습니다. 계속 찍으십시오.」라는 문장과 손그림이 들어 있다.
발전편 소개에는 「기본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조금 더 심도 있는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제작하였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20년 전에는 큼직한 책을 몇 번이고 다시 펼쳐 읽었다면, 이제는 손바닥만 한 수첩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 필요할 때 꺼내 보는 셈이다.
네 권을 나란히 놓으면
사진가의 여행기에서 현상소 대표의 입문서로, 다시 필름 기록 서비스가 낸 책과 가방에 넣는 수첩으로. 필름을 배우는 자리가 조금씩 옮겨 왔다. 지금 필름을 시작한다면 어느 책부터 펼칠까? 오래된 책을 고른다면 필름 가격과 현상소 사정은 그때와 다르니, 책에 적힌 숫자는 지금 기준으로 다시 확인하며 읽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