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에는 카메라가 두 종류 있다. 작품을 찍는 무비 카메라, 그리고 그 현장을 찍는 스틸 카메라다. 뒤쪽을 맡는 사람을 유닛 스틸 포토그래퍼라고 부른다. 포스터에 쓰이는 컷, 배우들이 SNS에 올리는 현장 사진, 시간이 지나 아카이브로 남는 기록이 전부 이 사람 손에서 나온다.

HBO 드라마 〈유포리아〉의 현장에는 에디 첸이 있었다. 대만계 미국인, LA 기반. 그는 자신의 일을 유닛 스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첸과 그의 에이전트는 임베디드 포토그래퍼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공식 직군명이 아니라, 달라진 작업 방식을 설명하려고 만든 표현이다.

차이는 이렇다. 유닛 포토그래퍼는 제작 기간 전체를 따라다니며 기록을 남긴다. 첸은 중요한 촬영 기간에 집중해서 들어가고, 대신 배우와 감독과 스태프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연기 장면과 비하인드의 경계가 흐려진 사진이 거기서 나온다.

안전한 사진만 찍던 시절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첸은 2012년 촬영 스태프 노조인 ICG 로컬 600에 들어간 뒤 〈브루클린 나인나인〉, 〈글리〉 같은 현장에서 일했다. 그때 방송사가 요구한 건 정확한 사진이었다. 수평과 수직이 맞고, 피사체가 정면으로 보이고, 어디에 써도 문제가 없는 컷.

메이크업 의자에 앉아 분장을 받고 있는 배우 제이콥 엘로디
메이크업 의자의 제이콥 엘로디. 방송사가 요구하던 정면 구도와는 거리가 먼 사진이다. 이미지 ⓒ Eddy Chen, courtesy of i-D

몇 년이 지나자 소진이 왔다. 패션 사진가이자 멘토였던 벤 모리스가 해준 조언이 그를 돌려세웠다.

요구받은 사진은 찍어라. 그러면서 항상 너를 위한 사진도 한 장 남겨라.

첸은 개인 필름카메라를 현장에 들고 가기 시작했다. 구도를 기울이고, 심도를 얕게 열고, 렌즈 앞을 일부러 가려보기도 했다. 방송사 지침을 정면으로 어기는 사진들이었다. 필름값과 현상비는 자기 돈으로 냈다.

그런데 제작사가 그 질감에 반응했다. 이후로는 필름 예산이 따로 붙었다. 필름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다른 유닛 스틸 사진가들과 구분해 준 방법이 됐다.

유포리아

2018년 HBO의 사진 담당자가 첸에게 연락했다. 〈애니멀 킹덤〉에서 그가 찍은 필름 사진을 보고서였다. 젊은 배우들이 나오는 새 파일럿의 분위기와 맞겠다는 판단이었다. 그 파일럿이 〈유포리아〉였다.

시즌 1에서 첸은 후지필름 디지털카메라와 필름카메라를 함께 썼다. 시즌 2를 앞두고 HBO가 전한 요청은 한 줄이었다. 필름을 더 많이 찍어 달라는 것.

어두운 객석에서 렉시의 연극을 보며 웃고 박수 치는 관객들
렉시의 연극 장면에 참여한 출연진과 관객. 시즌 2. 이미지 ⓒ Eddy Chen, courtesy of i-D

본편 자체가 필름으로 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 스틸과 드라마 화면의 질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코닥이 올해 정식 라인업에 넣은 영화용 컬러 네거티브 VERITA 200D 도 〈유포리아〉 새 시즌 촬영을 위해 개발됐다는 점을 앞세웠다.

코닥 VERITA 200D 필름통 세 종 함께 읽기 확장하는 코닥, 정리하는 후지 유포리아 새 시즌 촬영을 위해 개발됐다는 VERITA 200D 가 정식 라인업에 올랐다. 같은 시기, 후지필름의 흑백 라인은 정리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다만 여기서 하나를 구분해야 한다. 첸이 현장 스틸에 쓴 코닥 필름은 스틸 카메라용이다. 드라마 본편에 들어가는 영화용 스톡과는 다른 물건이다. 그는 이후 〈디 아이돌〉에서 프로젝트마다 결과를 다르게 만들기 위해 시네스틸로 바꿨다.

창문을 두드린 몇 초

시즌 2를 대표하는 젠데이아의 이미지가 있다. 포스터 촬영에서 나온 사진이 아니다.

루의 침실 세트 밖이었다. 샘 레빈슨 감독과 촬영감독 마르첼 레브가 조명과 구도를 잡고 있었다. 첸은 창문 너머로 방 안에 서 있는 젠데이아를 봤다. 그는 셔터 소리를 막는 방음 케이스인 블림프에 니콘 F6 를 넣어 들고 있었고, 렌즈는 58밀리였다.

유포리아 촬영장에 지어진 루의 침실 세트. 침대에 두 배우가 앉아 있다
루의 침실 세트. 첸이 창문 너머로 젠데이아를 발견한 곳이다. 이미지 ⓒ Eddy Chen, courtesy of i-D

창문을 두드려 젠데이아의 시선을 끌었다. 찍을 수 있었던 시간은 몇 초였다. 연속으로 서너 프레임을 눌렀고, 그중 젠데이아가 팔을 내리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한 장이 남았다.

두세 달 뒤 HBO 는 그 사진을 시즌 2 의 KEY ART 로 골랐다. 포스터와 예고편, 홍보물 전체의 중심이 되는 대표 이미지를 말한다. 첸에 따르면 손을 크게 대지 않았다. 원본을 크롭하는 정도로 끝났다.

유포리아 시즌 1 KEY ART 유포리아 시즌 2 KEY ART
시즌 1(왼쪽)과 시즌 2 KEY ART. 두 시즌 모두 첸이 찍은 젠데이아의 사진이 쓰였다. 사진 Eddy Chen · ⓒ HBO

작품의 얼굴이 되는 이미지가 통제된 스튜디오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현장을 아는 사진가가 준비 과정과 배우의 짧은 반응을 읽고 있을 때, 촬영 준비 시간에도 그런 사진이 나온다.

카메라는 한 대가 아니다

첸의 장비는 프로젝트와 장면에 따라 계속 바뀐다. 한 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라이카를 언제부터 썼는지는 짚어둘 필요가 있다. 그가 현장에서 라이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시즌 2가 끝난 뒤, 〈디 아이돌〉부터다. 2023년 라이카 갤러리 LA 에서 연 개인전 「Idol Moments」 는 전량 35밀리 필름으로 찍었고 보디는 라이카 MP 와 M7, 필름은 시네스틸이었다. 유포리아 시즌 1·2 의 필름 사진을 라이카로 찍었다는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아래는 시즌 2 공개 당시 매체에 배포된 공식 스틸이다. 위의 현장 필름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사람이 같은 현장에서 만든 두 종류의 결과물이 보인다.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유포리아 시즌 2 공식 스틸
시즌 2 공식 스틸. 각 장이 필름으로 찍혔는지는 출처가 개별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사진 Eddy Chen / HBO

Get it and get out

첸이 반복해서 말하는 건 장비가 아니라 접근 권한과 신뢰다.

강도 높은 연기를 찍을 때는 배우에게 먼저 어디까지 가능한지 묻는다. 젠데이아는 시즌 1부터 그가 가까이서 찍는 걸 허락했고, 나중에는 카메라가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은 채 연기를 이어갔다. 배우 시드니 스위니는 자기 프로젝트에 첸을 직접 부르고 다른 배우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백스테이지에서 헌터 셰이퍼에게 입을 맞추는 젠데이아
카메라가 이만큼 가까이 갈 수 있는 건 장비가 아니라 관계 때문이다. 이미지 ⓒ Eddy Chen, courtesy of i-D

허락을 받았다고 모든 테이크를 찍지는 않는다. 필요한 프레임이 나오면 바로 빠진다.

찍고 나가라.

대신 타이밍을 본다. 배우가 연기에 들어가기 직전과 감독이 컷을 외친 직후에는 감정이 아직 남아 있다. 그때 찍은 사진은 극 중 장면인지 비하인드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현장에 들어갈 때 카메라를 여섯 대까지 걸고 들어가기도 한다. 렌즈를 갈아 끼우는 시간을 없애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효과가 하나 더 있다. 배우와 스태프가 카메라와 필름에 대해 물어보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그 관계가 가까운 거리에서 플래시를 터뜨릴 수 있게 만든다.

항상 카메라를 네다섯 대씩 몸에 걸고 다닌다.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효과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쉬운 것 같다.

그러면서도 현장을 멈추게 하면 안 된다. 배우뿐 아니라 촬영팀과 제작진 전체의 작업 흐름을 존중해야 하고, 언제 빠져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이 큰 대가족 같다가도, 어떨 때는 고등학교로 돌아간 것 같다. 나는 그걸 다 기록하는 학교 사진사 같은 기분이 든다.

실패를 남긴다

첸은 필름 한 롤을 통째로 장노출 실험에 쓰기도 한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로 셔터를 누르고, 빛이 흐른 자국과 흔들림을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가 시즌 2 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는 후지필름 GA645W 로 찍은 젠데이아의 흑백사진이다. 과수원 같은 곳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장면을 1~2초 셔터에 플래시를 함께 터뜨리며, 피사체를 따라 카메라를 움직여 찍었다. 의도한 노출 설정이 아니었는데 사람의 형태는 남고 배경만 번졌다.

배우 앵거스 클라우드가 상점 네온사인 앞에 선 사진도 장노출과 플래시로 찍었다. 카메라를 아래로 움직여 네온 빛이 얼굴까지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첸은 이 두 장과 젠데이아 KEY ART 를 시즌 2 의 대표적인 결과로 꼽는다.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에디 첸이 유포리아 시즌 2 촬영장에서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
i-D 가 공개한 시즌 2 현장 필름사진. 촬영 사이사이의 시간이 대부분이다. 이미지 ⓒ Eddy Chen, courtesy of i-D

아버지의 카메라에서 시작해서

첸은 어릴 때 아버지가 물려준 니콘과 마미야로 사진을 시작했다. 대학을 마치지 않고 LA 로 옮겨 사진가의 길을 골랐다. 초기 사진은 니콘 D200 에 아버지의 50밀리 F1.4 렌즈로 찍은 것들이고, 피사체는 당시 여자친구이자 지금의 아내였다.

플리커에서 현업 사진가들에게 먼저 연락을 돌렸다. 그렇게 만난 멘토들에게 상업 촬영과 유닛 포토그래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웠다. 받은 도움을 다음 사람에게 돌려주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어서, 지금도 업계를 묻는 신진 사진가들에게 시간을 내려고 한다.

요즘 그는 스틸에서 영상 쪽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슈퍼 8, 미니DV, 오래된 소니 사이버샷의 동영상 기능 같은 완벽하지 않은 장비들을 쓴다.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생각하기보다 프로젝트마다 카메라와 필름을 바꾸는 쪽을 택하고 있다.

참고

첸의 인터뷰 전문은 아래 영상에서 볼 수 있다.
The Photographer who Shot Euphoria, White Lotus & The Idol | Eddy Chen ↗

참고 출처: PHOTO CINEMATICA 유튜브 인터뷰(작업 방식·장비·KEY ART 제작 경위), BuzzFeed News(카메라 대수·학교 사진사 발언), Leica Gallery LA · SHOOTonline(「Idol Moments」 전시). 인터뷰 인용은 영어 자동자막을 정리한 자료를 옮긴 것이라 표현이 원문과 다를 수 있다. KEY ART 렌즈에 대해 첸은 58밀리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