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냉장고 앞에서 고민이 길어진다. 무슨 필름을 넣고 나가지? 그래서 오피트 필름 카탈로그를 뒤졌다. 독자들이 올린 사진 5,600장 넘는 가운데, 가을에 꺼내기 좋은 필름 일곱 가지와 그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두 장씩 골랐다.

필름 설명은 오피트 카탈로그에 적어 둔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사진이 언제 찍혔는지는 알 수 없어서, 「가을에 찍은 사진」이 아니라 가을과 잘 어울리는 사진으로 봐 주시면 좋겠다.

Kodak Gold 200

노란 잎에는 역시 노란 필름

햇빛이 드는 나무 테이블 위 접시에 솔방울이 담겨 있다.
Kodak Gold 200 · Rolleiflex 2.8F.사진 @ishmaelzorba

맨 위 은행나무 사진이 이 필름으로 찍은 것이다. 카탈로그에는 「따뜻한 황금빛 색감」이라고 적어 뒀다. 은행잎처럼 원래 노란 것을 찍으면 그 노란색이 한 번 더 진해진다. 값에 비해 결과가 안정적이라 처음 필름을 사는 사람에게 가장 자주 권하는 필름이기도 하다.

꼭 단풍이 아니어도 괜찮다.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테이블 하나만 있어도 이 필름은 할 일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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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film C200

아직 덜 물든 초록을 찍고 싶다면

초록 잎 사이로 주황빛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
Fujifilm C200 · Canon EOS-1N.사진 @sva_photograph
나무 그늘이 드리운 공원 흙길.
Fujifilm C200 · Nikon F3.사진 @haehwan_film

가을이라고 다 노랗고 빨갛진 않다. 10월 초까지는 초록이 더 많다. 후지필름 C200은 시원한 초록과 청록이 살아 있는 필름이다. 코닥 쪽이 따뜻하다면 이쪽은 조금 서늘하다.

값도 가볍다. 후지필름 컬러 네거티브 가운데 가장 저렴한 줄이라, 산책길에 부담 없이 한 통 넣어 가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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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man Phoenix 200

붉은 기운을 일부러 즐기는 필름

소나무가 늘어선 공원 산책길. 바닥이 붉은 기운으로 물들어 있다.
Harman Phoenix 200 · Yashica FX-3. 작가의 말 「점심시간 회사 주변 산책」.사진 @dodododok_xi_01
마른 잎과 풀 사이에 앉은 흰 고양이.
Harman Phoenix 200 · Pentax KM.사진 @make___real

흑백 필름으로 이름난 하만이 2023년에 내놓은 첫 컬러 필름이다. 대비가 강하고 베이스가 붉고 입자가 거칠다. 얌전한 색을 기대하면 당황할 수 있다.

그 붉은 기운이 가을에는 오히려 잘 맞는다. 소나무 길 바닥이 노을처럼 물든 첫 사진이 그렇다. 작가는 「점심시간 회사 주변 산책」이라고 적었다. 그냥 걷는 길도 이 필름을 거치면 조금 낯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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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ky Color 200

다시 돌아온 중국 필름

흰 구름 아래 붉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모여 있다.
Lucky Color 200 · Nikon AF600.사진 @jafneeel
잎이 진 가로수가 선 도심 교차로와 덮개를 씌운 손수레.
Lucky Color 200 · Pentax 645N II.사진 @c.melo_pic

중국 러키의 컬러 네거티브는 2012년에 생산이 멈췄다가 2025년 상반기에 다시 나왔다. 카탈로그에 적은 특징은 중립적인 색에 살짝 도는 붉은 기운, 고운 입자, 또렷한 대비다.

물들기 시작한 나무를 찍은 첫 사진과 잎이 다 떨어진 거리를 찍은 두 번째 사진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필름으로 초가을과 늦가을을 한 번에 본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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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still 400D

해가 짧아지는 오후에

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산 능선과 주차장에 선 흰 차.
Cinestill 400D · Contax G1.사진 @visualemotion_
넓은 잔디밭에 서 있는 큰 나무들.
Cinestill 400D · Leica M7.사진 @tsuki_gaze

씨네스틸이 2022년에 내놓은 데일리 필름이다. 50D보다 감도가 높고, 800T보다 색이 자연스럽다. 영화 같은 색을 일상 풍경에 쓰고 싶을 때 고르는 필름이다.

가을은 해가 금방 진다. ISO 400이면 해 질 무렵까지 셔터 속도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산 능선 너머로 해가 지는 첫 사진을 보면 이 필름이 노을빛을 어떻게 남기는지 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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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ography LomoChrome Color '92

색을 조금 더 세게

주황색 꽃이 가득 핀 꽃밭. 필름 테두리와 필름 이름이 함께 찍혀 있다.
Lomography LomoChrome Color '92 · Fujica Pocket 350.사진 @rubidium_film
담벼락 사이 골목길 바닥에 붉은 잎이 흩어져 있다.
Lomography LomoChrome Color '92 · Pentax 17.사진 @jay.perfectframe

로모그래피가 2023년에 내놓은 필름으로, 90년대 영화의 색을 다시 내 보려고 만들었다. 깊은 파랑, 생생한 빨강, 맑은 노랑에 입자가 풍부하다.

주황 꽃밭과 붉은 잎이 흩어진 골목, 두 사진 모두 색이 짙고 묵직하다. 일반 C-41로 현상하지만 필름통에 DX 코드가 인쇄돼 있지 않다. 자동 카메라라면 ISO를 직접 맞춰야 한다는 점만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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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tmere 400

가을을 흑백으로 찍어 보면

나무 그늘 아래 낙엽이 깔린 땅을 찍은 흑백 사진.
Kentmere 400 · Yashica L AF.사진 @dalbada.photo
마른 풀숲 앞 길가의 차량 진입 방지봉을 찍은 흑백 사진.
Kentmere 400 · Nikon F3.사진 @baravi.archive

단풍 철에 흑백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색을 빼면 낙엽이 쌓인 결이나 마른 풀의 질감이 더 잘 보인다.

켄트미어 400은 일포드 자회사 라인으로 알려진 입문용 흑백 필름이다. HP5나 Delta보다 값이 싸고 결과는 충분히 안정적이다. 흑백을 처음 해 보는 가을이라면 이 필름부터 넣어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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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을 필름은?

일곱 가지로 줄이느라 빠진 필름이 많다. 포트라도, 엑타 100도, 벨비아도 다 가을에 잘 맞는다. 혹시 이 목록에 없는 필름으로 찍은 가을 사진이 있다면 오피트 필름 페이지에 올려 주시면 좋겠다. 다음에 이런 글을 쓸 때 꼭 들여다보겠다.

사진을 실어 주신 열네 분께 감사드린다. 모두 오피트에 사진을 올리면서 사이트와 SNS, 종이 매거진 게재에 동의해 주신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