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냉장고 앞에서 고민이 길어진다. 무슨 필름을 넣고 나가지? 그래서 오피트 필름 카탈로그를 뒤졌다. 독자들이 올린 사진 5,600장 넘는 가운데, 가을에 꺼내기 좋은 필름 일곱 가지와 그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두 장씩 골랐다.
필름 설명은 오피트 카탈로그에 적어 둔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사진이 언제 찍혔는지는 알 수 없어서, 「가을에 찍은 사진」이 아니라 가을과 잘 어울리는 사진으로 봐 주시면 좋겠다.
Kodak Gold 200
노란 잎에는 역시 노란 필름
맨 위 은행나무 사진이 이 필름으로 찍은 것이다. 카탈로그에는 「따뜻한 황금빛 색감」이라고 적어 뒀다. 은행잎처럼 원래 노란 것을 찍으면 그 노란색이 한 번 더 진해진다. 값에 비해 결과가 안정적이라 처음 필름을 사는 사람에게 가장 자주 권하는 필름이기도 하다.
꼭 단풍이 아니어도 괜찮다.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테이블 하나만 있어도 이 필름은 할 일을 다 한다.
Fujifilm C200
아직 덜 물든 초록을 찍고 싶다면
가을이라고 다 노랗고 빨갛진 않다. 10월 초까지는 초록이 더 많다. 후지필름 C200은 시원한 초록과 청록이 살아 있는 필름이다. 코닥 쪽이 따뜻하다면 이쪽은 조금 서늘하다.
값도 가볍다. 후지필름 컬러 네거티브 가운데 가장 저렴한 줄이라, 산책길에 부담 없이 한 통 넣어 가기 좋다.
Harman Phoenix 200
붉은 기운을 일부러 즐기는 필름
흑백 필름으로 이름난 하만이 2023년에 내놓은 첫 컬러 필름이다. 대비가 강하고 베이스가 붉고 입자가 거칠다. 얌전한 색을 기대하면 당황할 수 있다.
그 붉은 기운이 가을에는 오히려 잘 맞는다. 소나무 길 바닥이 노을처럼 물든 첫 사진이 그렇다. 작가는 「점심시간 회사 주변 산책」이라고 적었다. 그냥 걷는 길도 이 필름을 거치면 조금 낯설어진다.
Harman Phoenix 200 카탈로그에서 보기 →
Lucky Color 200
다시 돌아온 중국 필름
중국 러키의 컬러 네거티브는 2012년에 생산이 멈췄다가 2025년 상반기에 다시 나왔다. 카탈로그에 적은 특징은 중립적인 색에 살짝 도는 붉은 기운, 고운 입자, 또렷한 대비다.
물들기 시작한 나무를 찍은 첫 사진과 잎이 다 떨어진 거리를 찍은 두 번째 사진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필름으로 초가을과 늦가을을 한 번에 본 셈이 된다.
Cinestill 400D
해가 짧아지는 오후에
씨네스틸이 2022년에 내놓은 데일리 필름이다. 50D보다 감도가 높고, 800T보다 색이 자연스럽다. 영화 같은 색을 일상 풍경에 쓰고 싶을 때 고르는 필름이다.
가을은 해가 금방 진다. ISO 400이면 해 질 무렵까지 셔터 속도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산 능선 너머로 해가 지는 첫 사진을 보면 이 필름이 노을빛을 어떻게 남기는지 감이 온다.
Lomography LomoChrome Color '92
색을 조금 더 세게
로모그래피가 2023년에 내놓은 필름으로, 90년대 영화의 색을 다시 내 보려고 만들었다. 깊은 파랑, 생생한 빨강, 맑은 노랑에 입자가 풍부하다.
주황 꽃밭과 붉은 잎이 흩어진 골목, 두 사진 모두 색이 짙고 묵직하다. 일반 C-41로 현상하지만 필름통에 DX 코드가 인쇄돼 있지 않다. 자동 카메라라면 ISO를 직접 맞춰야 한다는 점만 기억해 두자.
Lomography LomoChrome Color '92 카탈로그에서 보기 →
Kentmere 400
가을을 흑백으로 찍어 보면
단풍 철에 흑백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색을 빼면 낙엽이 쌓인 결이나 마른 풀의 질감이 더 잘 보인다.
켄트미어 400은 일포드 자회사 라인으로 알려진 입문용 흑백 필름이다. HP5나 Delta보다 값이 싸고 결과는 충분히 안정적이다. 흑백을 처음 해 보는 가을이라면 이 필름부터 넣어 봐도 좋다.
당신의 가을 필름은?
일곱 가지로 줄이느라 빠진 필름이 많다. 포트라도, 엑타 100도, 벨비아도 다 가을에 잘 맞는다. 혹시 이 목록에 없는 필름으로 찍은 가을 사진이 있다면 오피트 필름 페이지에 올려 주시면 좋겠다. 다음에 이런 글을 쓸 때 꼭 들여다보겠다.
사진을 실어 주신 열네 분께 감사드린다. 모두 오피트에 사진을 올리면서 사이트와 SNS, 종이 매거진 게재에 동의해 주신 사진이다.